노제 조사_ 광주전남추모연대 공동대표 박봉주
페이지 정보
본문
조사_ 광주전남추모연대 공동대표 박봉주
광주전남 추모연대 공동대표 박봉주입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1987년은 민중항쟁의 해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한열 열사를 잃은 가족들은 그 35년의 세월 동안 열사의 동생으로, 열사의 누님으로 불리는 질곡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어머님을 보내는 오늘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1987년 아들 이한열 열사를 보내고 배은심 어머님은 두 개의 이름을 가졌습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님 이소선 어머님이 그랬던 것처럼, 박종철 열사의 아버님이신 박정기 아버님이 그렇게 불리셨던 것처럼, 하나의 이름은 이한열 열사 어머님이셨습니다. 또 하나는 배은심 어머님이셨습니다.
지난 9일 어머님의 부음을 듣고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 누님이 외치는 통곡을 들었습니다.
“한열아, 엄마가 네 곁으로 가셨다.” 이 절규를 들었습니다.
어머님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면서(보면) 어머님의 표정이 거의 어두우셨습니다.
하지만 배은심 어머님이 활짝 웃으실 때는 각종 집회에, 각종 추모제에 대학생들이, 많은 대학생들이 참여했을 때 어머님의 표정이 활짝 펴지셨습니다.
아들 이한열 열사를 가슴에 담고 사셨기 때문에 그러셨을 것입니다.
작년 3월 어머님을 모시고 군산에 계신 문정현 신부님께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두 분이 이야기 하시며 어머님이 그런 제안을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꽃 피는 봄이 오면 꽃 구경 가자는 소리가 아니라 두분이서 손잡고 전국의 투쟁현장을 찾아다니자고 두 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저는 너무나도 부끄럽고 너무나도 죄송스럽습니다.
80이 넘은 노구에도 노동자 농민 민중들과 함께하려는 삶을 끝까지 고수하셨던 어머님을 뵙기가 너무 부끄럽습니다.
그렇게 어머님은 35년의 세월을 견뎌내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주셨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런 어머님을 이제 보내드려야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 평생 가슴속에 담고 살았던 이한열의, 열사들의 명예를 회복하고자 했던 민주유공자법을 어머님께 드리지 못했습니다.
오늘 어머님을 보내드리는 영전에 우리 약속 한 번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한열 열사뿐만 아니라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스러져간 많은 열사들에게 민주유공자법을 만들어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국가유공자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모두 함께 다짐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님의 영전에, 먼저 가신 열사들의 영전에 기필코 민주유공자법을 만들어 드리겠다고 이 자리에서 약속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약속을 가슴에 안고 오늘 어머님을 보내드립시다.
어머님 평안히 영면하십시오.
- 이전글노제 인사말_한동건 상임장례위원장 22.01.24
- 다음글인사말_ 장남수 상임장례위원장 22.01.2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