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살아오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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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살아오신 길
배은심 어머니는 1940년 1월 17일(음 12.09) 전남 순천에서 출생하였다. 이병섭님과 혼인해 슬하에 2남 3녀를 둔 다복한 가정의 어머니였다.
우리 주변에서 어디에서든 볼 수 있던 평범했던 어머니의 삶은 1987년 6월 9일 아들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매일같이 이한열이 누워있는 광주 망월동묘지를 어린 손녀를 업고 버스를 타고꼬불꼬불 길을 걸어, 도대체 왜 아들이 죽어야만 했는지, 왜 앞장서야만 했는지 아들의 생각을 알기 위해 노력했다.
1987년 8월 민가협 사무실을 방문하며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같은 아픔을 가진 부모들을 만나 1990년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유가협·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전신)을 만들어 서로 위로하고 자식의 뜻을 잇는 활동을 이어왔다.
학생 시위 현장뿐 아니라 노동자, 농민, 철거민 투쟁현장처럼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소리치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손을 내밀었고, 민주주의를 역행하려는 일이 생기면 가장 앞장서 길을 내었다.
최루탄 제조 회사를 찾아가 사장에게 사과를 받아내기도 하고, 이 사실을 마치 회사와 유가족이 서로 화해한 듯 보도한 언론사에 몇 날 며칠을 항의해 정정보도를 받아내기도 했다.
1997년 11월부터 2000년 3월까지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유가협 회장 재임 중 1998년 11월부터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422일간의 농성을 주도 하였으며, 마침내 2000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그 뒤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국가인권위원회법’,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군의문사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 등이 잇달아 제정되며 여러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밝히게 된 데에는 유가협의 역할이 컸다.
2007년 5월부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을 맡으며 2009년 서울 용산참사범국민대책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여 유가족들과 함께했으며, 2014년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도 “세월이 30년 가까이 흘러도 여전히 자식 잃은 아픔에 시달리는데, 이 부모들은 앞으로 어찌 살까 걱정이 된다.”며 희생자 가족을 찾아가 위로하였다.
2015년 경찰의 물대포에 의해 백남기 농민이 쓰러졌을 때에도 그 가족을 찾아 위로했으며, 수많은 열사·희생자 가족의 곁에는 늘 어머니가 계셨다.
2020년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명예회장이 되었다.
어머니의 마지막 외침은 “민주유공자법 제정하라!”였다.
어머니는 2021년 6월 10일부터 국회앞 1인 피켓시위, 10월 7일 시작된 국회 앞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 천막농성장’을 매주 오가며 마지막 순간까지 농성에 참여하였지만, 2022년 1월 9일 자식들의 명예가 회복되는 그날을 보지 못하고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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